
1. 빌헬름 분트
빌헬름 막시밀리안 분트(1832년 8월 16일~1920년 8월 31일)는 독일의 철학자, 생리학자 겸 심리학자이며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독일 바덴의 만하임에서 태어났고 베를린 대학, 튀빙겐 대학 등에서 생리학과 철학을 배운 후 생리학적 심리학 연구를 했다. 그 후 1875년~1918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특히,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1879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개설했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심리학자들이 이 실험실에 모여들어 실험 심리학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 그는 민족 심리학을 연구하며 문화 인류학과 비교 심리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주요 저서로는 ‘생리학적 심리학 강요’, ‘민족 심리학’, ‘심리학 원론’ 등이 있다.
2. 주요 연구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처벌하는 용도로 쓰이던 강당을 당시 교수로 재직하던 분트에게 실험실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곳에서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많은 심리학자가 인정한다. 오직 철학의 한 부분으로 비과학적인 탐구 방법으로 연구되던 심리학이 분트의 실험실에서는 측정이 가능한 형태로 조작된 정의, 통계를 통해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는 여러 연구가 수행되었는데 정신 과정의 속도 측정, 감각에 대한 분석, 시간에 대한 감각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심리학은 과학적인 학문으로 인정받았으며, 분트의 실험실에서 공부한 제자들은 활발한 교육활동과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현대 심리학은 라이프치히 대학에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이 탄생한 1879년을 시초로 보고 있다.
분트는 심리학이 과학적인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정신과 세상에 대한 주관적인 인간의 경험)을 분석해야 한다고 믿었다. 화학자들이 물질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기본요소를 정하고 그 기본 요소로 물질을 쪼개는 것을 보고 분트는 인간의 의식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구성주의라는 접근 방법을 택했다. 여기서 구성주의란 인간의 의식을 기본적인 감각과 느낌이라는 기본요소로 쪼개어서 분석하는 방법이다. 또한 어떤 상황과 시점에서도 인간에게는 다양한 의식 상태가 공존하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분트는 내성법을 사용했다. 여기서 내성법이란 자기의 내부 성찰법, 자기 경험에 대한 주관적인 관찰이다. 이처럼 분트는 실험 제어와 주관적 측정을 통해 의식과 정신의 영역을 구성적인 측면으로 분석하여 철학과 심리학을 구별하는 데 기여했다. 분트는 생리학을 배경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이유는 감각 과정, 반응 시간, 주의에 대한 것에서 분트의 연구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피실험자들은 메트로놈의 향기를 맡거나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일반적인 자극에 노출된 후 자기 감각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 분트는 의식적인 정신 상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은 내성법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트의 내성법은 정교한 자기 관찰법의 일종으로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분트는 과거 경험 또는 개인적인 해석에 의해 한쪽으로 편향되는 상황을 정확히 관찰하도록 심리학 학생들을 훈련했고 그 결과를 통해 의식에 관한 이론을 발달시켰다. 물론 개인의 해석에 모든 실험 과정이 의존하고 있고 단지 그것을 관찰할 뿐인 실험이므로 매우 주관적인 실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분트는 체계적으로 실험의 조건을 다양화시키는 것이 일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분트는 실험법을 감정, 감각 이상의 고등 정신 과정에는 적용할 수 없는 영역이라 보고 이를 대신해 민족 심리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문화인류학이 대상으로 삼는 예술, 종교, 언어 등의 여러 현상을 여기에 포함한 것이다. 원시 시대, 영웅과 신의 시대, 인간성의 시대순으로 문화가 지나온 길을 따라 올라가는 일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발달을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신발달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분트는 정신 발달의 일반법칙을 실험 심리학과 별도로 발견하기 위해 원시민족의 정신적 특성을 대상으로 그 문화의 결과인 종교, 신화, 언어 등에 관해 연구한 ‘민족 심리학’을 10권에 이르러 작성했다. 또한 분트는 ‘국민과 그 철학’에서 철학적 특성이 국가마다 어떻게 다른지도 고찰하였다. 오늘날 사회 심리학, 문화 심리학, 민족학 등에서 민족 심리학에서 다뤄진 여러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민족 심리학이라는 말은 현재 거의 쓰지 않고 있다.
3. 심리학에 끼친 영향
분트가 탄생시킨 심리학 실험실은 독립된 학문 분야를 탄생시켜 심리학만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실험 심리학은 행동주의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실험적 방법들은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다. 분트는 심리학 발달의 많은 부분에 기여했는데 그중 하나는 그의 연구가 실험적 방법들을 통해 통제된 조건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신 기능의 세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는데 그것은 감정, 생각, 이미지이다. 이 세 가지는 오늘날 인지 심리학에서 연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3요소이다. 즉, 분트로부터 인지 과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트의 영향으로 행동주의자와 같은 다른 연구자들 또한 과학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내성법의 실험 방법론이 실제로 과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의 주장이다. 스키너는 내성법은 오직 관찰할 수 있는 행동에 관한 결과만을 얻을 수 있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확한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후 분트의 지도를 통해 박사학위를 받은 에드워드 티치너는 ‘마음의 요소’들을 발견하고자 내성법을 사용했고 분트의 구성주의를 주도했다. 하지만 구성주의는 내성법과 함께 쇠퇴했는데 그 이유는 똑똑하고 언변이 좋은 사람만을 내성법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성법을 통한 연구에서 사람과 경험에 따라 크게 다른 결과가 나타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구성주의는 쇠퇴하게 되었다.
분트 연구의 가장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내성법이라는 측정 도구이다. 이에 따라 행동주의라는 새로운 심리학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는 구성주의와 내성법에 대한 비판과 함께 나타났다. 구성주의에 비해 행동주의는 매우 객관화된 심리학의 분야이다. 그 이유는 행동주의 자체가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만을 연구하는 학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의 요소’는 직접 관찰할 수 없지만, 분트의 구성주의에서는 이를 내성법을 통해 측정하려 했다. 하지만 행동주의에서는 인간의 ‘마음의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후에 인지주의 등으로 심리학계는 계속 변화하며 발달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존에 철학과 유사했던 심리학이 분트의 자연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통해 획기적으로 바뀌었고 현대 심리학의 토대를 실험 심리학으로 쌓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빌헬름 분트는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