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지크문트 프로이트

1.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년 5월 6일~1939년 9월 23일)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오스트리아 심리학자이다. 프로이트는 억압의 방어 기제와 무의식에 대한 이론, 정신 분석자와 환자의 대화를 통해 정신을 치료하는 정신분석학적 임상 치료 방식을 창조했다. 그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또한 그는 동기 부여라는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에너지를 성욕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치료 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 전이에 대한 이론, 무의식적 욕구를 꿈을 통해 관찰하는 등의 치료 기법, 뇌성마비 등을 연구했다. 신프로이트주의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 대부분을 버리거나 수정했다. 프로이트의 방법 및 관념은 정신 역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프로이트는 법 공부를 하려 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과 괴테의 ‘자연’을 읽고 크게 감명받아 의과 대학을 선택하여 빈 대학교의 의과대학에 입학해 카를 클라우스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프로이트의 첫 논문은 1876년에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 보고서에 실은 ‘뱀장어의 정소’라는 논문이다. 여기서 그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게 된다. 1885년 프로이트는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장 밑에서 약 5개월간 장학생으로 연구할 때 히스테리와 최면술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후에 정신분석학 창안에 매우 큰 동기가 된다. 1874년, 독일의 생리학자인 에른스트 빌헬름 폰 브뤼케는 정신 역학의 개념을 생리학 강의를 출간하며 제안했다. 그는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는 에너지 체계임을 주장했다. 그 당시 브뤼케는 프로이트의 주임 교수였는데, 그에 따라 프로이트는 그의 새로운 ‘역학적’ 생리학을 받아들였고 정신과 무의식의 관계 및 정신에 대한 프로이트의 역동적 심리학이 탄생한다. 1879년, 프로이트는 의무 군 복무를 수행하기 위해 1년간 연구를 접어두었고, 이후 1881년에 ‘하급 어류 종의 척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학자인 장 마르탱 샤르코와 공동 연구를 위해 1885년 10월 프로이트는 파리에 갔다. 그는 이때 파리에서 신경학 연구가 재정적으로 좋지 않은 것을 느껴 진로를 정신 병리 치료로 선회하게 되었다고 한다. 샤르코는 청중 앞에서 히스테리 환자를 자주 시연했다. 하지만 후에 프로이트는 신경과 진료소를 차린 후 환자들에게 최면 기법을 실험했으나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이 치료 방식을 포기했다. 그 뒤로는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사용했다. 이 방식은 후에 ‘대화 치료’로 알려지게 된다. 이 대화의 목적은 환자가 무의식에서 거부하여 갇힌 감정 에너지를 풀어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환자가 어떤 감정을 거부하는 것을 ‘억압’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정신에 해를 끼치며 육체적 기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후에 ‘정신 신체증'(심신증)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화 치료’는 정신 분석학의 기초라고 평가받고 있다. 40대가 된 프로이트는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 등의 공포증에 시달리며 수많은 심신증 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 시기에 프로이트는 본인의 인격 발달의 변천과 꿈, 기억에 대해 탐색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이렇게 자신을 분석하던 중 프로이트는 포근했던 어머니 아말리아 프로이트에게 느낀 성적 감정을 상기했고 자신의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에 대해 적대감을 느꼈다. 이렇게 자기 분석을 계속하며 수집한 자료를 이용해 1899년 11월, ‘꿈의 해석’을 출판했고 빈 정신 분석 학회를 만들었다. 책을 출간한 뒤로 프로이트 이론에 관한 관심이 점점 많아졌지만 동시에 이론에 대한 비평도 점점 많아졌다. 평소 프로이트의 생각을 지지하던 카를 융 또한 후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평했다.

1930년, 프로이트는 괴테 상을 받는다. 하지만 3년 뒤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하며 책을 불태우고 없애는 과정에 프로이트의 책도 불탔다. 후에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며 프로이트는 비밀경찰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그 뒤로 정신 분석 학회가 나치로 인해 해산되고 프로이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가 프로이트의 모든 책과 재산을 몰수하자 그는 망명길에 오른다. 프로이트는 지독한 애연가였는데, 이에 따른 구강암으로 30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2. 심리학

행동에 무의식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대중에 알린 심리학자이며 정신분석학회를 창시했다. 그의 이론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길이 열렸다.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과 꿈의 해석을 통한 ‘대화 치료’를 만들고 지지하며 최면술을 포기했다. 자유 연상은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되었고 심리학에 사용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프로이트는 환자들에게 떠오르는 것은 전부 말하도록 했다. 후에 프로이트는 가장 고통스럽고 중요한 기억을 끌어내는 것에 환자가 저항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유 연상을 사용하며 프로이트는 철저하게 억압된 기억들이 의식 영역으로 뚫고 올라올 것이라는 견해를 갖게 된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이동에 따라 쾌감을 추구하는 신체 부분과 방법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이 발달 단계를 ‘심리성적 발달 단계’라고 하며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재기, 성욕기’로 나눈다. 처음 세 단계는 ‘전성욕기’, 뒤의 두 단계는 ‘성욕기’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자기방어 기제 이론을 발표했다. 자기방어 기제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불안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며 기능을 수행하도록 도와준다. 여기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무의식에서 작용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왜곡하여 불안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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